교토 화엄사
본 기행문은 우리나라의 문화유산 답사중
왜인에 찟긴 우리나라 사찰을 수없이 목격하며
비분한 마음을 지울수 없던중
만행의 근거지라 할수 있는 교토와 오사카를 찾아
반성없는 국민성의 뿌리를 살펴본다는 심정으로
섬나라 땅을 밟았다
각설하고 민족의 불구대천 의 땅을 돌아보면서
들끓는 감정을 다독여 가며
천천히 왜국의 과거와 현재를 가늠해 본다
교토에 우리 선조들의 귀무덤을 아직도 후대에 남겨서 유적거리로 물려주고 있는 일제
이들이 아직도 우리나라를 옛 조선으로 착각하고나 있는건지
아니면 이곳을 찾는 세계여러나라 를 비롯하여 우리에게 과시하고 있는건지
아무튼 이 겉다르고 속다른 왜놈들의 본모습을 한번 드려다 보고 싶었다
비온 뒤끝이라 하늘은 쾌청하나 무덥기 그지없는
바닷가에 위치한 오사카공항
별 기대는 안했으나 역시 단조롭기 그지없는 풍경이다,
멀리 시가지가 눈에 들오고
기후와 지형 지질은 울나라 제주도와 비슷하나 운치라곤 없는 단조로운 땅
처음부터 이들에 대한 적개심 때문인지
이채롭다는 느낌보다는 삭막하기 그지없다,
이곳은 화엄사라 칭하는 절집의 주차장이란다
사실은 백제유민의 유산유적들이거나 울나라를 본따만든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얼마나 대단한가 궁금증이 난다,
아무튼 주차장을 나와 걸어 들어가 보는데
거리는 불볕탓인지 썰렁하고 덮기는 또 왜그리 더운지
한참을 걸어 들어가 보니 땀은 비오듯하고
적진에 들온듯 더위에도 불구하고 괜시리 으스스한 느낌이다
어디를 보나 단조로운 외관들
이놈들의 질서의식은 도로운전 습관부터 친절도 하며 가히 세계적인데
알고보면 칼에 문화에서 비롯된
칼잡이 문화의 소산임을 말하지 않아도 짐작이 가는데
칼에 의지한 폭력문화는 튀는 놈은 무조건 척살하는
칼잡이들의 폭력성으로 부터 약자들의 복종문화가 깊숙히 뿌리내린 탓이다.
가이드라인 밖에서 본 왜색짙은 본 건물
목조건축으로 덩치는 엄청큰데 임란당시 왜병들 투구모양도 이와 비슷했건걸로
영화에서 본 모양새로 정나미 떨어지는 왜놈들의 진면이다,
정서적으론 도무지 감흥조차 일지 않는 단조로운 건축양식이다.
내키진 않으나 아이들의 성화에 사진 한컷 찍어 본다
그옛날 우리 조상들의 귀무덤이
여기서 머지 않은 곳에 초라하게 안치 되어 있는걸로 기억되는데
아쉽게도 가이드가 우리나라 관광객들의 정서를 감안해서인지
저곳이라고만 말해주고 버스를 돌려 돌아 온것이 전부인지라
아쉽게도 귀무덤을 찍어 올리지 못해 안타깝다.
매표소 앞에서 담아본 목조건축물
덩치만 덩그라니 큰 목조건물에 입구에는 화엄사란 간판이 떠억하니 입을 벌린듯 서 있고
큰문 양옆에 우리네 사찰을 닮은 천장상을 새긴 목신을 세워 놓았다.
천장이라기 보담은 칼을든 살귀같은 느낌이 더 가까운데
필자만의 생각인지,
예술적 감 보다는 음산한 기운이 도는 칼잡이 귀신상만 같은데
이 절이 당시에 백제 유민들의 작품이라는 설도 만만치 않은데 왜놈들은 그걸인정치 않고
절의 유래에는 그런 사실들은 쏘옥빼고 저들의 순수작품임을 강조하고 있다,
안쪽은 제법 널다랗게 정원을 펼쳐놓았으나 한마디로 테마가 없는 황막함이 완연한 곳인데
왜인들은 애시엔 미적 감각도 없었다는 것인지.
난데없이 사슴을 떼거지로 풀어놓아 가는곳마다 배설물에 노린네 가 진동한다
하긴 짐승들이야 무슨 죄가 있으리요.
사람들을 틈사이를 다니며 먹을 것을 구걸하는지 냄새를 맡느라 코를 킁킁 거리며 혀를 낼름거린다.
정원마당에서 보면 우측편으로 제법 정갈해 보이는 후문인듯 싶은 쪽문이 보이고
붉은 색을 좋아하는지
가는곳마다 오래된 건물에 붉은 색을 칠해놓아 보는눈이 현란스럽다,
천박하기 그지없는 색감이다,
임란당시 왜병의 투구모양을 한지붕
살육을 밥먹듯 좋아했던 놈들이나 투구모양도 이와 비슷했던 것을 보면 살육을 하고도 극락왕생을 바라며
저 모양을 본떠 만든 투구를 뒤집어 썻던건 아니었는지,
아무튼 걸음을 옮겨 가까이 다가서 보니
좌우로 늘어선 대나무 숲
우리나라 전라도 땅에 들어선듯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대나무는 이 고장의 특산 수목인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화엄이란 커단 현판을 처마에 붙인 명실공히 화엄사란다.
유사이래 우리에게 못된짓만 일삼던 자들도 극락은 가고 싶은건지
내부에 부처상은 엄청난 규모이고 아마도 청동으로 부분부분을 이어만든 것인지
문앞에 서 있는 관광객들이 작게 보이는 것은
목조건물이 대단히 큰탓인데 크다는 것 외에는
별감흥이 일지 않는 오래된 역사치고는 천박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건물이다.
덩치만 크다해서 대단한건가
아무튼 예술적 가치로는 별무한 나무집을 왜인들에게는 대단한 자부심인듯,
필자 의 시각으론 물론 미운 왜국의 유산인 탓도 있겠거니 하는 독자들이 있을수 있으므로
사실을 확인해보시면 필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를 하실듯
의문나시면 궁금한 그림마다 클릭하여 확대해 보시면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고찰과 비교하여
건축물의 단조로움을 확실히 공감 하시리라
너른것 외엔 볼품없이 획일적인 절뜨락
아마도 이절은 국난에 불타 없어진 익산 미륵사지를 흉내낸것이 아닌지
미륵사지를 둘러본 필자의 소견이다,
크게 확대 클릭해 봐도 토옹 신통치 않는 처마 매무새
청동 대불상
불상뒤켠의 엄청난 광배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사찰에서 느끼던 웅후한 기운이 없다,
무슨조화일까?
왜국의 운이 땅으로 부터 이미 버려진 터임을 예시하는 건지
부처께오서도 겉다르고 속다른 이들의 행을 알고 계심인가,
대웅전 앞뜰 십미터 부근에서 미미하나마 보통의 기운만이 맴돌뿐,,,
엄청난 크기의 광배
우측엔 관음보살 임을 확인했는데 좌측엔 자세히 보지못해 잘모르겠다
이 그림은 옆면에서 본 법신의 광배
뒷켠에서 본 엄청난 광배
본전불의 우측 관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