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위하여

ㅡ 낡은책 ㅡ

남강 2007. 7. 7. 05:13

어머니는 오늘도

집안에 아무도 없다싶으면

장롱속에 깊이 감춰둔 

낡은 책을  꺼내드신다.

 

매일 책을 들고서

어머니 생이 고스란이 녹아있는 책갈피를

한장씩 한장씩 넘겨 가시며

다헤진 옷가지를 주섬주섬 펼쳐 놓고는

찬찬히 살피다가

누구라도 올라치면

책장을 덮고

당신만 아는곳에 슬며시 넣어 두신다,

 

나는 그 옷이 어떤 옷일까 궁금해진다,

어머니 의 보물이 무엇일까,

비밀스런 상자안이 자꾸만 궁금 해진다,

 

어머니는 다헤진 바람이 숭숭한 옷을 걸치고 계신다,

나는 숭숭뚫린 바람골을 파먹으며

이만큼 커서 어머니의 허깨비만 남은 육신을 두고

짐스러워 하고있다,

 

오늘도 빛바랜 책갈피마다 

한장 한장 열어서

젊은날 모두들 돌아간 

진홍의 노을길을

망연이 바라 보신다,

 

아 어머니!

지금 당신곁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아직도 스적스적 끌고 가시는 

힘겨운 아버지의 손수레를 그만 놓으시지요!

이렇게 눈빛으로 말씀드려도

어머니의  책읽기는 멈추지 않으실 눈치다,

 

 

이제 어머니는,

어머니 의 비밀한 장소에 

다헤진 낡은 책을 갈무리 할 시간을

천천히 준비하신다,

 

애야 입맛이 없다!

됐으니  그만 가져와라!

손녀가 놓아 드리는 과일을

가랑잎 같은 팔을 저어 웃목에 밀쳐놓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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