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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탈북시인 장진성씨 인터뷰 1 - "北에서의 생활은 `노예의 행복`이었다"

남강 2008. 5. 12. 05:26

"北에서의 생활은 '노예의 행복'이었다"
탈북시인 장진성씨 인터뷰-1
미국의 소리(VOA)   
 한국 서울에 살고 있는 장진성 씨는 북한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한 북한에서도 장래가 촉망되는 조선작가연맹의 맹원이었습니다. 그리고 조선노동당 소속 작가 가운데 귀족작가라고 불리는 시인(詩人)이었습니다.
 
 북한에서 김정일의 각별한 신임을 받아 북한의 체제와 이념 선전하는 시(詩)를 노동신문에 올리기도 했던 장진성 씨가 최근 한국에서 첫 시집을 냈습니다.
 
 북한에서의 생활을 ‘노예의 행복’이었다고 말한 장진성씨. 자신의 양심을 담아낸 첫 시집을 받아 든 장진성 씨는 엷은 미소로 소감을 대신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서울입니다> 오늘과 내일 이틀 동안 탈북시인(脫北詩人) 장진성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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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진성: 북한에서는 과거에 선전선동 부분이 굉장히 발달되어 있었어요. 그래서 작가들이 인정을 많이 받고 그랬었는데, 경제난을 겪으면서 종이사정도 어려울 겁니다. 그러니깐 이런 소설은 용량도 크고요. 그리고 또 북한 같은 경우 모든 문학이 정치화 되어 있거든요. 정치문학인 것이죠. 이런 상황에서 선전선동 수단으로는 소설보다는 시가 아무래도 경제적으로도 돈이 적게 들고, 그리고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시간적으로나 효과가 크고 그래서 시인들을 많이 우대하게 되는 것이죠.
  노동신문 같은 경우에는 김정일의 사인이 있어야지만 그 당보에 시를 소개하도록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기자: 탈북 시인 장진성씨는 북한 노동신문에 자신의 시를 수차례 올렸던 장래가 촉망되던 젊은 작가였습니다. 하지만 8년 전 1차 남북정상회담으로 평양이 분주했던 지난 2000년, 자신의 위치를 떨쳐버리고 탈북을 결심하게 됩니다.
 
 장진성: 사람이라는 게 믿음이 쌓이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지만, 믿음이 허물어지는 시간은 굉장히 짧거든요. 김정일의 사생활이라든가 그리고 극과 극인 김정일과 북한 주민들과의 삶의 차이를 보면서 탈북해야겠다는 생각을 항상 품고 있었던 거죠. 정말 그 체제 하에서는 교통질서라도 어겨야지 순응하면서는 못 살겠더라고요. 가장 가난한 나라에 가장 부유한 왕이 살고 있다는 이 점이 가장 안타까웠고요. 그리고 북한 주민들의 고통은 그렇게 계속되고 있는데 북한은 아직도 김정일 독재를 유지하고 있고 이에 대해서 마음 한 켠에서는 증오심을 가지고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저의 탈북 동기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죠.
 
 기자: 북한 정권, 곧 김정일 체제를 찬양하는 시로 인민들의 맹목적인 충성을 이끌어 왔던 북한의 시인 장진성 씨, 열성적으로 작품 활동을 해왔지만 어느 순간 북한 체제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면서 더 이상 같은 땅에서 같은 모습으로 살 수 없다고 결심하게 됩니다.
 
 장진성: 고난의 행군 때, 특히 역전이나 시장 같은 데 가면 많았는데, 시체들이 정말 마치 전쟁이 금방 끝난 것처럼 그렇게 널려 있었는데요. 산 사람들을 실어 나를 트럭도 없기 때문에 시체들이 그냥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평양보다도 지방에 많았죠. 평양은 그런대로 좀 통제되어 있고 관리되고 있는 도시니까 괜찮았었는데, 지방에 출장 같은 거 나가면 그런 거 봤을 때 충격이 컸죠.
 
 기자: 체제 선전의 맨 앞자리에서 전혀 돌아보지 못했던 굶어 죽어간 300만 인민들의 모습을 직접 보게 된 장진성 씨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장진성: 김정일의 신임을 받는 특권층이나 권력층을 봐도 김정일 나라에서의 특권이고 행복일 뿐이지, 좀더 깊이 들어가 보면 김정일의 독재를 알고 인민들의 참상을 알고 나면 이것이 하나의 노예의 행복이고, 노예 만족에 불과하다, 누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있으리라 봅니다.
 
 <두만강을 넘으며>
 
 돌처럼 얼어붙은
 국경 두만강
 뛰어가면 몇 발자국
 넘으면 단 몇 초
 
 고작
 이것이었던가
 우리에게 한생 없어보이던
 자유의 거리가
 해방의 시간이 (장진성 낭독)
 
 
 기자: 자유와 해방을 찾아 건넌 두만강을 생각하며 쓴 <두만강을 건너며> 라는 시입니다. 장진성 씨가 탈북을 결심하고 두만강을 건너기까지 4년이라는 시간을 고민했는데, 그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두만강을 건너는 일은 찰나였고, 북한과는 전혀 다른 딴 세상으로 향한 희망의 강이었습니다.
 
 장진성: 제가 중국에 와서 충격 받았던 것은, 연길이라는 도시는 중국에서도 정말, 동북 지역에서도 가장 촌이에요. 그런데서도 구호판을 써 붙인 걸 보니까 ‘연변은 세계로, 세계는 연변으로’ 이런 구호가 있더라고요. 그런데 지금 북한은 모기장을 치고 있잖아요. 중국이라는 나라는 그 시골도 세계로 나가겠다고 하는데, 북한은 온 나라를 철저히 ‘모기장 치자’ 이렇게 통제하고 있으니까 그런 데 대해서 충격이 컸습니다.
 
 기자: 한국에 온지 4년, 장진성 씨는 이제 당당한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한국 사람들 누구나처럼 13자리 주민등록번호를 가지고 있고, 그 주민등록증으로 대통령도 뽑고 국회의원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태어나면 출생증 번호
 성인 되면 시민증 번호
 입당하면 당원 번호
 북한에선 내 번호는 많았지만
 내 생일, 내 존재가 없었던
 인민의 순번, 노예의 순서였네
 
 하여 나는 살짝 웃었네
 대한민국 주민증을 받는 이 날
 주민번호 알게 된 이 날이
 내 비로소 사람으로 태어난
 내 삶의 진짜 생일이어서 ('주민등록증 번호' 장진성 낭독)
 
 
 정호승 시인: 시적 능력이 좀 뛰어난 분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이런 구체적인 사실들을 시의 그릇에 앉히기도 상당히 힘들 텐데, 어쩌면 이렇게 또 시의 그릇에 제대로 앉혔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기자: 한국의 유명 작가인 정호승 시인은 장진성 씨가 쓴 70여 편의 시를 통곡으로 쓴 한 편의 서사시라고 평했습니다.
 
 서울에서 미국의 소리 도성민입니다.
 
[ 2008-05-06, 17:54 ]

 

 

 

 

출처 : 조갑제 닷 컴

http://www.chogabje.com/board/view.asp?C_IDX=22521&C_CC=AZ

출처 : 북한주민인권
글쓴이 : oliv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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