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의 江

ㅡ 나이를 들어간다는건(53) ㅡ

남강 2004. 12. 16. 18:18

 

명경을 닦으며

잘 닦여지지 않는 명경을 닦다가

오랜 그을음을 닦아내다가

무엇으로 닦을까를 고민하다가

원상회복은 어려울 거라는 자괴에 끙끙 앓다가

알토란 같은 내 날들이 떠나가고

계절의 끝 빈들을 거닐어가다 보면

저 들녘!

무수한 씨알이 등천해간 들녘언저리

그 가장자리 낮은 곳

내 선자리,

채 여물지 못한 낱알들이 떨어져서

새들에 쪼이고

바람에 날리고

더러는, 더러는 들불 에 살라가고

땅에 묻히어 가는 비극을 보며

아하!

여물지 못한 씨알들,

한여름 은혜로운 해를 향해

손가락질로 웃어대던 그 오만하던 품새를 떠올리고는

내 명경에 그을음을 바라보며

저것이로구나!

해 없이는 닦여지지 않는 그 이유에 대하여

차츰 눈을 떠서는

이미 계절 속으로 사라진 해를 그리다가

공중에 매달린 해를 바라보고는

어제의 해의 주소를 묻다 말고는

철늦은 철이 나를 부르는 소리에

그제야 눈을 뜨는 아침!

 

내 빈들을 향해

헛기침을 하며 묻는말

애당초 농부의 씨뿌림 으로 택함받은 씨알들아!

내년 봄!

이 터울에 너희들 준비된 씨알들!

네가 옥토에 떨어진 그날부터

오로지 바람비 즐겨 더불고

푸른 초원을 가꾸다가

네 소원이 해에게 다가가서

네가 씨알의 소명을 받거들랑

나날이 숙이기를 힘쓰라!

내 이제 말하거니와

늦은날 오후 내내 명경을 닦거니와

애초 내거울 은 맑았느니

내 님께오서 내게 주신 명경은 참 아름다웠더니

날마다 숙이기를 게을리

해 더불어 조롱하기를 좋아만 타가

오후 늦은 날 그을 은 명경하나에 빈들에 서서

다지난 여름날 해 그리워 이리 젖어가느니

들녁 가득 넘치던 푸르름 등천한 빈들에서

홀로  설워 가느니.

 

해의 날이 네게 오거들랑

힘써 나날이 숙이어 가라.

네가 타작마당에 들지 못하는 것은

순전히 네 탓이라!

 

해를 조롱하지 말라!

날이 많다고 여기지도 말며

비 바람이 차다고 여기지 말라

너를 연단 시키심 은 사랑하는 아버지 그 크신 사랑법

튼실한 열매 맺음을 도우심 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