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경을 닦으며
잘 닦여지지 않는 명경을 닦다가
오랜 그을음을 닦아내다가
무엇으로 닦을까를 고민하다가
원상회복은 어려울 거라는 자괴에 끙끙 앓다가
알토란 같은 내 날들이 떠나가고
계절의 끝 빈들을 거닐어가다 보면
저 들녘!
무수한 씨알이 등천해간 들녘언저리
그 가장자리 낮은 곳
내 선자리,
채 여물지 못한 낱알들이 떨어져서
새들에 쪼이고
바람에 날리고
더러는, 더러는 들불 에 살라가고
땅에 묻히어 가는 비극을 보며
아하!
여물지 못한 씨알들,
한여름 은혜로운 해를 향해
손가락질로 웃어대던 그 오만하던 품새를 떠올리고는
내 명경에 그을음을 바라보며
저것이로구나!
해 없이는 닦여지지 않는 그 이유에 대하여
차츰 눈을 떠서는
이미 계절 속으로 사라진 해를 그리다가
공중에 매달린 해를 바라보고는
어제의 해의 주소를 묻다 말고는
철늦은 철이 나를 부르는 소리에
그제야 눈을 뜨는 아침!
내 빈들을 향해
헛기침을 하며 묻는말
애당초 농부의 씨뿌림 으로 택함받은 씨알들아!
내년 봄!
이 터울에 너희들 준비된 씨알들!
네가 옥토에 떨어진 그날부터
오로지 바람비 즐겨 더불고
푸른 초원을 가꾸다가
네 소원이 해에게 다가가서
네가 씨알의 소명을 받거들랑
나날이 숙이기를 힘쓰라!
내 이제 말하거니와
늦은날 오후 내내 명경을 닦거니와
애초 내거울 은 맑았느니
내 님께오서 내게 주신 명경은 참 아름다웠더니
날마다 숙이기를 게을리
해 더불어 조롱하기를 좋아만 타가
오후 늦은 날 그을 은 명경하나에 빈들에 서서
다지난 여름날 해 그리워 이리 젖어가느니
들녁 가득 넘치던 푸르름 등천한 빈들에서
홀로 설워
가느니.
해의 날이 네게 오거들랑
힘써 나날이 숙이어 가라.
네가 타작마당에 들지 못하는 것은
순전히 네 탓이라!
해를 조롱하지 말라!
날이 많다고 여기지도 말며
비 바람이 차다고 여기지 말라
너를 연단 시키심 은 사랑하는 아버지 그 크신 사랑법
튼실한 열매 맺음을 도우심 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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