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위하여

ㅡ 가을소묘(素描) ㅡ

남강 2009. 9. 30. 16:30

 

  

 

여백이 얼만큼 남았으므로

천천히 붓을 그어 나갑니다.

 

사랑는 이는 등을 보이며

멀어져 가고

남겨진 이는자리에서 움직일줄 모릅니다.

그러나 뭐,

사는일이 별일이야 있겠습니까,

 

이별인들 뭐 별거겠습니까!

만나고 헤어지고

못견디게 그리우면

서녘해 홀로

선혈같은 핏물 쏟아놓는 거지만요.

 

우정이 뭐 별거겠습니까.

항상 그자리

상현달 뜨는 저물녘

홀로 우짓는 산노루 의

울음같은 거지만요.

 

고독은 뭐 대수 이겠습니까,

바람이 지나고 나면

그만인걸요.

 

그렇지만요,

가을날 담벼락에 붙은

붙박이 우체통

며칠째 수신인 불통인 빛바랜 옆서한장

 

심중에 각인된 지난 여름이

이젠 지우고 싶어진 겁니다.

계절이 끝나면

모두 떠나는 거잖아요.

 

떠날수 없다는건

슬픈 일이지요.

이미 가을은 중턱에 들어섯는데

저 낙옆이 다지기전

들녘은 추수를 끝낼 거구요.

 

마지막 기러기가 북위 빙점을 너머 오기만 하면

세상은 온통 하얀 눈발이 휘날릴 거구요.

그때쯤 성냥팔이 소녀와

왕자를 떠날수 없었던 제비는

하늘천사들의 영접을 받고 있을테지요.

 

아직은 원고지에 여백이 조금은 남았으므로

천천히 붓을 그어 나가는 것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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