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의 과거 행적들
-돌아온kim (미주통일신문)-
Former South Korea President Kim Dae jung was North Korea deep
spy, in 1951~1952 Korea War Barbarity.
ddd another barbarity.
Catch the CIA in 2001, South Korea In cheon city.
View! Change of Korean language.

1.김대중의 과거를 알고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암으로 죽은 점
2.김대중은 6.25때 김일성의 비밀명령을 1년 6개월이나 단양에서 수행했다
3.6.25 당시 김대중의 공식 직책은 조선공산당 중앙위원입니다.
4.김대중 정권에서 인천에서 CIA 잡는다고 난리 친 것
5.김대중의 6.25때의 과거 잔인했던 만행과 국정원 청와대 민원
6.현재 김대중 만행지역 주민들의 진실 증명
7.살인사건과 간첩을 뒤집어 씌우려 했던 고통과 가족사 그리고 책임자 문책.
8.전부 투명한 과거와 미래를 위해 김대중 만행 전세계에 알리기
9.최근 대북송금 특별검사제 당시의 실무진 의문사
위의 내용을 위해 이 글을 올립니다.
진실이 승리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김대중은 한국전쟁 초기에는 목포에서 북한군(그 당시 인민군)의 부역관리를 했다.
그러나 그의 과거는 CIC에 있는 김대중 친구 김진하에 의해
김대중의 과거가 조작되었다.
김대중은 1951~1953년 한국전쟁 중 김일성의 비밀 명령을 1년 6개월이나 월악산
주변에서 농민을 잡아 북한군(그 당시 인민군)에 넘기는 일을 했다.
약, 1500 여명의 농민을 잡아 치악산에 남아있던 북한군에 넘기는 일을 했다.
그의 마지막 만행이 서린 곳이 장회리이다.
지역적으로는 한국 충청북도 제천군 덕산면.수산면.한수면이고 잡은 농민을 넘기
던 장소는 충북 단양군 단성면 장회리이다.
이제 한국도 정권이 바뀌어 기존 내용에 일부 중요한 사항을 추가했습니다.
제 주변 사람들 중 김대중의 과거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암을 가장해 제거되지
안았는가 하는 내용입니다.
김대중씨에게는 월악산 만행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수치스러운 과거일 것입니다.
김대중은 2000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입니다.
또한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에도 기여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면에는 아직도 거짓으로 가득합니다.
김대중은 북한의 조선공산당 중앙위원입니다.
최근에 김대중이 김정일에게 8억 달러의 돈을 제공하고 그 국회의 특별검사에
나간 실무진들을 무더기로 제거된 듯 합니다.
정몽헌 회장, 박태영 전라북도 도지사, 첩 2명, 국정원 김은성 2차장 딸, 이수일
국정원 차장 .정래찬 금융감독원 차장 등 의문사 했습니다.
김대중은 이미 한국의 KCIA가 1987년, 1988년 영구기록 보존 파일에 1946년에
목포에서 경찰 13명을 불질러 살해한 기록이 나옵니다.
그러면 여기서 그 후 한국전쟁 당시 김대중의 만행을 좀더 상세히 알아보자.
그리고 모두 알고 있는 2001년 김대중 정권이 인천에서 CIA 잡는다고 했던 것
도 같이 알아봅시다.
다시 한번 김대중 만행은 역사적 진실이며 저희 가족사입니다.
증명을 위해: nsa.cia.dia.mossad.mi5.mi6.drapa.w-house.
japan mof. fbi. un. cpi. 전세계 미국 12개의 사령부 발송
우리는 이 어마어마한 비밀을 어떻게 알까?
우리 어머님 고향이 충청북도 단양군 단성면 고평리 입니다.
우리 누님의 시댁이 충청북도 제천군 덕산면 월악리 입니다.
그리고 사돈 어른들이 덕산면 삼거리에 아직도 가족을 이루고 살고 계십니다.
역사적으로 모두 진실임을 밝힙니다.
우리 가족 2명(외삼촌.가족)이 김대중 패거리에 끌려갔고 김대중은 김일성의
비밀 명령을 월악산에서 1년 6개월이나 수행했고 잡은 농민은 치악산에
공급했습니다. 전쟁에서 북한군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김대중은
조선공산당 중앙위원에 가입합니다.
잠시나마 어마어마한 권력을 누립니다.
우리는 이 내용을 안다는 이유로 지난 10년간 고통으로 보냈습니다.
교묘한 방해와 자금원 차단. 차치기 등등 몇 차례 죽을 고비와
주변 가족들이 고통을 격었습니다.
지금도 한국은 전라도를 비롯 김대중 추종세력이 많아 너무도 힘이 듭니다.
물론 좌파정권에서 고통을 당한 사람이 너무도 많습니다.
이 글을 올리게 된 동기는 이렇습니다.
국정원 민원 2001년 3월 9일, 12일, 15일 내용입니다.
<김대중이 간첩인가요?
김대중은 6.25때 단양에서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정확하게는 단양 월악산 아래에서>
(한국전쟁인 1950년 6월 25일을 이야기합니다)
다시 청와대까지 민원(2001년 6월 19일)을 넣었더니
살인사건을 뒤집어 씌우려 했습니다. 또 간첩을 뒤집어 씌우려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내 아이에게 이상한 종류의 가스를 먹였습니다.
이때 온 사람이
"내가 이 세끼를 살인사건이 안되면 간첩을 씌워서라도 보내버린다"
고 하더군요.
이 내용은 형사2명과 전 직장 회사원 1명 등 3명이 들었습니다.
그러고는 인천에서 CIA 잡는다고 하더니 책임진다는 놈
아무도 책임을 안 지고있습니다.
그러고는 나라까지 미처 버렸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처음 국정원 민원 전에는 충북 단양군에 산불이 났고 산불이
난 것을 뒤집어 씌우려 했습니다.
그리고 위와 같이 간첩과 살인 사건을 뒤집어 씌우려 하더군요.
그런데 더 이상 한 것은 단양지역에서 김대중의 과거 또는 김대중이
6.25때의 만행을 잘 알고 있던 사람들과 과거 김대중을 잡으러 다니던 사람들의
자식들이 암을 가장해 교묘하게 제거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 때문입니다.
약 4~5명이 갑자기 암으로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좌파정권 내내 빨갱이 후손들은 일본으로 해외 연수를 가고 하는데 유독
김대중의 과거를 아는 사람들은 고통으로 시간을 보냈다는 겁니다.
어떻게 해서 빨갱이 자식들은 해외 연수도 가는데
6.25때 김대중을 잡으러 다닌 사람들의 자식들은 암으로 갑자기 죽나요.
또 제가 김대중은 간첩이고 월악산에 있었다는 것을 열변을 토하며 이야기했는데
이걸 들은 사람이 저와 같이 생활하다가 몇 가지 설명을 하면서 이 부분을 이야기
했나 본데 얼마 안 지나서 암으로 사망했습니다.
보통 암이면 2년은 고생을 합니다. 그런데 이분들은 바로 모두 사망했습니다.
또한 저에게도 국정원. 청와대 민원 후 계속 암 검사를 좀 받아라 또는 자기가
알고 있는 사람이 스님인데 암에 좋은 특효약이 있다면서 병원 가서 암 검사를
하고 암이면 그 특효약을 먹으면 낳는다고 하더군요
하도 여러 곳에서 이야기를 해서 저는 이상하긴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
데 암 검사를 받은 사람들이 사망했습니다.
저는 그 민원 후 정신감정도 받았는데 50문제.50문제.50문제 이렇게 150문제의
정신감정도 정신과에 가서 받았습니다.
146문제 맞췄습니다. 점수로는 96점에 해당하더군요.
즉, 국정원 민원 전에도 산불을 질러 뒤집어 씌우려 했고 국정원.청와대.대검민
원 후 살인사건을 뒤집어 씌우려 했고 또 간첩을 뒤집어 씌우려 했고 다시 CIA
잡는다고 난리 치는 사이 제가 아는 사람들 중 김대중의 과거를 아는 사람들이
제거된 듯 합니다. 이 사건 제조사 할 수 있을 까요.
국정원 직원 4명의 시국 선언문을 보면서 너무도 공감하여 정권 바뀌면 김대중
의 살인 행위들을 조사할 수 있을까 하는 간절한 마음이었습니다.
김대중은 6.25가 터지고 맥아더의 인천 상륙작전 후 단양에 투입되어 조선공산
당 중앙위원을 지냈습니다.
그 이전에는 괴산에서 인민군 위원장들 사상교육을 가끔씩 했습니다.
KCIA 자료 중 1987년 김대중 관찰기록 여기에는 “괴산지역 만행이 보고된 봐
있다”는 바로 그 부분이 제가 설명하는 지역입니다.
모두 역사적 진실임을 밝힙니다.
지금도 교육받은 사람들이 생존해 있습니다.
또 하나 얼마나 잔인했는지 6.25때 김대중은 초가집에 불을 질렀습니다.
시체를 끌고 다니면서 농민을 잡아서 치악산으로 보냈으며 치악산으로 간 농민
들은 총알받이로 인민군이 되어 마지막까지 싸우다 월북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모두 역사적 진실임을 알려드립니다.
필요하면 조선공산당 인민군위원장 부인과 인민군 그리고 김대중이에게 가족을
잃은 사람들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제 민원 후 미 하원에서도 메일이 왔으나 못 갔습니다.
국회 증언도 가능합니다.
*************************************************
a. 찾아가는 방법과 위치
김대중의 월악산 만행에 대해서 이것은 역사적 진실이다.
우리 가족이 증명합니다.
1951년, 1952년 김대중은 단양에서 김일성의 비밀 명령을 수행하고 있었다.
월악산 국립공원을 찾자. 충청북도 제천군 덕산면 월악리는 김대중이 사람을
잡아 가던 장소이다. 월악리 좌측 산에 6번이나 불을 질렀다.
덕산면 삼거리에서는 인민군과 행진을 했다.
그리고 김대중이 잡아간 농민은 약 1500여명에 이른다.
충북 충주에서 문경 수안보 쪽으로 가다가 살미면에서 좌측으로 단양이라는
팻말이 보인다.
여기서 충주호로 이어지는 강변을 따라가면 월악산 영봉이 나온다.
바로 영봉 입구가 김대중 만행이 자행된 장소다.
이곳에 김대중이 직접 부녀자를 끌어내고 초가집에 불을 질러 농민을 잡아갔다.
좀더 간략히 정리 대한민국->충정북도 충주->수안보 방면에서 단양으로 ->
월악산 송계계곡 입구에서 직진-> 한수면 영봉-> 영봉
아래가 김대중 만행지역이다.
살인마 김대중은 역사와 민족 앞에 진실을 밝히고 이젠 용서를 빌어야 한다.
모두 가보시기 바랍니다.
김대중은 이 주변에서 1년 6개월 동안 머물렀다.
조선인민군 7사단 잔류 게릴라와 같이 지구대에 남아있었다.
조선공산당 남조선로동당 중앙위원의 직책을 수행했다.
사회교육 방송에서도 김대중이 농민을 잡으러 다녔다는 내용이 나왔다.
************************************************
b. 아주 구체적인 자료를 가지고 검증해보자.
김대중은 1951~1953년 한국전쟁 때 충청북도 제천군 수산면 고평리 에서
인근에서 마을 사람 36명을 잡아갔다.
사람을 끌고 갔다. 그러나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유는 잡아놓은 농민을
장회리 에서 강을 건너 제천의 금수산 거처 치악산에 공급했다.
치악산은 북한군의 전투지역이다. 거리는 40km 정도 된다.
김대중은 농민을 잡아 인민군을 만드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김대중은 장회리 전투 후 다시는 단양에 모습을 들어내지 않았다.
장회리 전투는 한국전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전투였다 그래서 지금도 그 기록이
모두존재하며 김대중 정부시절 미군에 의한 오폭으로 몰고 가려다 미국이 반기
를 들었다. 또한 도기리 에서 초가집에 불을 질렀으며 덕산면 삼거리에서 인
민군과 행진을 했는데 아직도 지역 주민들은 모두 기억한다.
또한 단양에서 퇴각하던 인민군들이 저지른 만행은 이루 해아릴 수 없다.
이때 김대중의 정식 직책은 조선공산당 남조선 로동당 중앙위원이었다.
또한 농민을 잡으러 다니기 이전에는 괴산지역에서 인민군 위원회위원장과
조선공산당 청년대 사상교육을 시켰다.
또한 김대중 정권은 2001년 인천지역에서 cia를 잡는다고 지z랄 하다 가 결국 대
한민국이 미치는 우를 범했다.
김대중 만행 지역인 충북 단양으로 가자
충북 단양군 가곡면 위원장. 어상천면 위원장. 영춘면 위원장. 별방면 위원장
대강면 위원장 등을 괴산까지 불러 빨갱이 사상교육을 시켰다.
그러나 그들은 한국전쟁 끝나고 대부분 맞아 죽었다.
그리고 일부는 아직 생존해 계신다.
여기서 잠깐 조갑제님 이나 손충무님 등은 안기부 1987년판에 과거 김대중이 괴
산지역에서 만행을 저지른 보고가 올라 온 적 있다 라는 부분을 모르고 있는듯하다.
안기부 자료에는 서울에서 잡혀서 끌려서 목포까지 가서...,
그러나 미국의 자료나 안기부 자료나 모두
김대중의 친구인 김진하에 의해 조작되어 되었다 고 한다
특히 김진하씨가 1995년8월24일자 와싱턴 투데이 주간지 톱으로 김대중의 해상보
안대 경력은 자기 김진하에 의해 조작되었다고 육성 녹음을 남기고 얼마 후 돌아
가셨다고 한다.
즉 김대중의 모든 목포 해상방위대 경력은 가짜라는 것을 죽기 전 증명하셨다.
*************************************************
c. 최근 김대중 만행 지역을 찾은 감회.
최근에 다시 김대중의 만행이 서린 곳을 찾았다.
모처럼 단양강변을 따라 장회리 고평리 수산 1.2리 수산면. 덕산면. 한수면 그
리고 도기리 월악리 문경 세제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한 바퀴 돌며 역사적
아이러니에 젖는다.
김대중은 여기서 1년 반이라는 세월을 지냈다.
그리고 김대중은 이미 20대 후반의 빨갱이였다.
그리고 김대중은 조선공산당 남조선 노동당 중앙위원이었다.
초가집에 불을 지르던 월악리도 또 산과 들에 불을 지르던 도기리도 세월을 잊
은 듯 한겨울로 접어들며 을씨년스럽다.
이제라도 김대중이의 만행을 역사 앞에 밝혀라 이미 김대중은 6.25때부터
살인마다. 우리가 증명한다.
그리고 조사하자. 인민군과 김대중은 월악산 밑 월악리.
도기리. 한수면에 1년 반을 머물렀다.
노벨상보다 역사의 진실이 우선이고 노벨상보다 정의가 우선이다.
지금까지 그랬다면 단 하루 만이라도 제대로 조사를 하자
그래서 김대중의 만행을 역사와 국민 앞에 알려라!
살인마 김대중을 고발하지 못한 이유? 신 군부도 모른 이유는 무었일까.
그러면 의문? 바로 왜 신군 부도 몰랐을까? 여기에 사는 사람들은
세가지 문제가 있었다.
1. 김대중이와 같이 지낸 것, 즉 1년 반이나 김대중이와
같이 지낸 것이 혹시 자기들한테 부담이 될 까봐 쉬쉬한다.
2. 가려? 누구든 한 두 명은 김대중 패거리와 어울렸고 같이 농민을 잡으러 다
닌 사람이 가족이나 친척 중에 있다는 것.
3. 마지막에 김대중이 이끌고 치악산으로 끌려갔다는 것이죠
그리고 치악산전투에서 살아남거나 남아있던 사람들은 북한으로
끌려갔다는사실입니다.
즉, 혹시라도 치악산 전투에서 살아남아 북한에 살고 있다면 그 가족으로써 김
대중을 대놓고 고발 할 수는 없다는 것 입니다.
이것이 김대중을 베일에 가린 이유입니다. 위의 이유와 세월이지나 과거 정권이
김대중씨에게 많은 제제를 가해서 잊고 살았죠!
*********************************************************
별첨 최근에 발생한 김대중 만행-노벨상에미처 여러사람 제거한 듯
(인터넷 등 참고)
현대건설 회장 : 정몽헌-북한에 천문학적인 돈 제공. 높은 건물 추락시 공기
저항으로 대부분 벽 가까이 떨어짐 그러나 정몽헌은 화단까지
날아가 떨어 젓다.
그렇게 높은 건물에서 추락해서 피한방울 안 흘림 정몽헌 친구가
여러장의 유서 중 1장 분실했다고 증명.
전라북도 도지사:박태영-돈 모금책 국정원직원4명 시국선언문 참고
김정일 한민전 공개 내용참고
국정원 5차장 : 이수일-방콕아세아델타은행 김정일 계좌송금 국정감사
자료참고
금융감독원 차장 : 정래찬-금융감독원에서 공적 자금 내역 조사.내사 담당.
사실 최근까지도 의심 왜 굳이 금감원?
최근에야 의문 풀림. 주성영의원 이희호 해외 비자금 6조.
국정원 2차장 : 김은성 딸-국정원 차장으로 공인으로는 처음 김대중의 사생아
문제를 제기했다가 딸을 잃어버림. 국감자료 참고
부산시장 : 안상영-노무현의 불알 친구 김대중의 대북송금 특검은
노무현이 들어서자 마자 김대중의치부를 건들인 유일한 사건임.
이 문제로 노무현은 미국에 있는 민미영의 딸을 국정원까지
동원해서 귀국시킴.(제거 될 까봐)
이건희 딸 : 이xx- 대북 송금시 북한이 약속한 돈이 안 들어 온다고
(이건은 심증만) 하루 동안 남북 정상회담 지연시킴
정상회담 잡아놓고 지연시킨 예가 없음. 즉, 이때 삼성에서 모
자라는 돈을 가지고 가지 않았겠나 하는 내용.
노무현 선거 기간 중 삼성이 이회창 쪽으로 기울자 제거했을
수도 있다는 예기도?
차용애(김대중 본부인 :하숙집 주인딸):목을 매 자살(김정일).음독
(한국정보기관)
그러나 차용애 집안은 김대중을 의심함.
또 다른 첩:노벨상을 타기 전 2000년 6월에 병원에서 뛰어내려 자살
(아무도 본 사람 없음. 상부지시라고 주변 입막음)
딸이 있던 것이 sbs에 보도됨. 김은성이 공식적으로 불음
그러나 60넘은 할머니가 병원 창문 넘기는 쉽지 않음.
또 다른 첩:2006년 집에서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니 화장실에서 죽음.
딸이 발견해서 신고함.
김대중은 위에서처럼 첩의 딸이 2명이 더 있고
또 다른 첩에서 딸이 한 명 더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신정아.변양균 사건 때 신정아가 아니냐는
소문이 무성 했슴.또한 땅굴을 조사하던 김병오 대령(51사단)제거.
또한 땅굴을 조사하던 정지용 씨(전 안기부직원) 제거
또한 땅굴을 해외에 알리던 자이 박사(미국인) 제거
또한 땅굴을 조사 하던 윤모 하사 제거
모두 자살이라고 하는데 이분들의 지위와 능력과 사회 활동 등을 미루어
또한 죽은 분들의 부인들과 가족들의 설명으로는 자살할 이유 없다고...
모두 김대중 패거리(살인마부대-국정원 직원4명의 시국선언문 참고)에
의해 제거된듯합니다.
제발 전세계가 나서서 역사적 만행을 증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지금도 이어지는 위치추적과 자금원 차단의 교묘함 정말 힙듭니다.
그러나 제발 역사의 진실만은 밝혀야 하겠습니다.
만약 조사가 필요하면 충청북도 제천군 수산면.덕산면.한수면.괴산면을 찾으세요.
김대중이 살인마임을 증명해 줄 것입니다.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한 한달이나 최소 일주일 이상으로 시간을 잡고 잡입해
서 차근 차근 알아보세요. 농민 1500여명을 잡아간 만행을 알 수 있습니다.
김대중의 부녀자 강간. 인민군과 행진. 초가집에 불지른 지역. 시체를 끌고 다닌
지역을 주민들이 증명할 것 입니다.
Former South Korea President Kim Dae jung was North Korea deep
spy, in 1951~1952 Korea War Barbarity.
ddd another barbarity.
Catch the CIA in 2001, South Korea In cheon city.
View! Change of Korean language.

1.김대중의 과거를 알고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암으로 죽은 점
2.김대중은 6.25때 김일성의 비밀명령을 1년 6개월이나 단양에서 수행했다
3.6.25 당시 김대중의 공식 직책은 조선공산당 중앙위원입니다.
4.김대중 정권에서 인천에서 CIA 잡는다고 난리 친 것
5.김대중의 6.25때의 과거 잔인했던 만행과 국정원 청와대 민원
6.현재 김대중 만행지역 주민들의 진실 증명
7.살인사건과 간첩을 뒤집어 씌우려 했던 고통과 가족사 그리고 책임자 문책.
8.전부 투명한 과거와 미래를 위해 김대중 만행 전세계에 알리기
9.최근 대북송금 특별검사제 당시의 실무진 의문사
위의 내용을 위해 이 글을 올립니다.
진실이 승리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김대중은 한국전쟁 초기에는 목포에서 북한군(그 당시 인민군)의 부역관리를 했다.
그러나 그의 과거는 CIC에 있는 김대중 친구 김진하에 의해
김대중의 과거가 조작되었다.
김대중은 1951~1953년 한국전쟁 중 김일성의 비밀 명령을 1년 6개월이나 월악산
주변에서 농민을 잡아 북한군(그 당시 인민군)에 넘기는 일을 했다.
약, 1500 여명의 농민을 잡아 치악산에 남아있던 북한군에 넘기는 일을 했다.
그의 마지막 만행이 서린 곳이 장회리이다.
지역적으로는 한국 충청북도 제천군 덕산면.수산면.한수면이고 잡은 농민을 넘기
던 장소는 충북 단양군 단성면 장회리이다.
이제 한국도 정권이 바뀌어 기존 내용에 일부 중요한 사항을 추가했습니다.
제 주변 사람들 중 김대중의 과거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암을 가장해 제거되지
안았는가 하는 내용입니다.
김대중씨에게는 월악산 만행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수치스러운 과거일 것입니다.
김대중은 2000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입니다.
또한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에도 기여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면에는 아직도 거짓으로 가득합니다.
김대중은 북한의 조선공산당 중앙위원입니다.
최근에 김대중이 김정일에게 8억 달러의 돈을 제공하고 그 국회의 특별검사에
나간 실무진들을 무더기로 제거된 듯 합니다.
정몽헌 회장, 박태영 전라북도 도지사, 첩 2명, 국정원 김은성 2차장 딸, 이수일
국정원 차장 .정래찬 금융감독원 차장 등 의문사 했습니다.
김대중은 이미 한국의 KCIA가 1987년, 1988년 영구기록 보존 파일에 1946년에
목포에서 경찰 13명을 불질러 살해한 기록이 나옵니다.
그러면 여기서 그 후 한국전쟁 당시 김대중의 만행을 좀더 상세히 알아보자.
그리고 모두 알고 있는 2001년 김대중 정권이 인천에서 CIA 잡는다고 했던 것
도 같이 알아봅시다.
다시 한번 김대중 만행은 역사적 진실이며 저희 가족사입니다.
증명을 위해: nsa.cia.dia.mossad.mi5.mi6.drapa.w-house.
japan mof. fbi. un. cpi. 전세계 미국 12개의 사령부 발송
우리는 이 어마어마한 비밀을 어떻게 알까?
우리 어머님 고향이 충청북도 단양군 단성면 고평리 입니다.
우리 누님의 시댁이 충청북도 제천군 덕산면 월악리 입니다.
그리고 사돈 어른들이 덕산면 삼거리에 아직도 가족을 이루고 살고 계십니다.
역사적으로 모두 진실임을 밝힙니다.
우리 가족 2명(외삼촌.가족)이 김대중 패거리에 끌려갔고 김대중은 김일성의
비밀 명령을 월악산에서 1년 6개월이나 수행했고 잡은 농민은 치악산에
공급했습니다. 전쟁에서 북한군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김대중은
조선공산당 중앙위원에 가입합니다.
잠시나마 어마어마한 권력을 누립니다.
우리는 이 내용을 안다는 이유로 지난 10년간 고통으로 보냈습니다.
교묘한 방해와 자금원 차단. 차치기 등등 몇 차례 죽을 고비와
주변 가족들이 고통을 격었습니다.
지금도 한국은 전라도를 비롯 김대중 추종세력이 많아 너무도 힘이 듭니다.
물론 좌파정권에서 고통을 당한 사람이 너무도 많습니다.
이 글을 올리게 된 동기는 이렇습니다.
국정원 민원 2001년 3월 9일, 12일, 15일 내용입니다.
<김대중이 간첩인가요?
김대중은 6.25때 단양에서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정확하게는 단양 월악산 아래에서>
(한국전쟁인 1950년 6월 25일을 이야기합니다)
다시 청와대까지 민원(2001년 6월 19일)을 넣었더니
살인사건을 뒤집어 씌우려 했습니다. 또 간첩을 뒤집어 씌우려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내 아이에게 이상한 종류의 가스를 먹였습니다.
이때 온 사람이
"내가 이 세끼를 살인사건이 안되면 간첩을 씌워서라도 보내버린다"
고 하더군요.
이 내용은 형사2명과 전 직장 회사원 1명 등 3명이 들었습니다.
그러고는 인천에서 CIA 잡는다고 하더니 책임진다는 놈
아무도 책임을 안 지고있습니다.
그러고는 나라까지 미처 버렸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처음 국정원 민원 전에는 충북 단양군에 산불이 났고 산불이
난 것을 뒤집어 씌우려 했습니다.
그리고 위와 같이 간첩과 살인 사건을 뒤집어 씌우려 하더군요.
그런데 더 이상 한 것은 단양지역에서 김대중의 과거 또는 김대중이
6.25때의 만행을 잘 알고 있던 사람들과 과거 김대중을 잡으러 다니던 사람들의
자식들이 암을 가장해 교묘하게 제거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 때문입니다.
약 4~5명이 갑자기 암으로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좌파정권 내내 빨갱이 후손들은 일본으로 해외 연수를 가고 하는데 유독
김대중의 과거를 아는 사람들은 고통으로 시간을 보냈다는 겁니다.
어떻게 해서 빨갱이 자식들은 해외 연수도 가는데
6.25때 김대중을 잡으러 다닌 사람들의 자식들은 암으로 갑자기 죽나요.
또 제가 김대중은 간첩이고 월악산에 있었다는 것을 열변을 토하며 이야기했는데
이걸 들은 사람이 저와 같이 생활하다가 몇 가지 설명을 하면서 이 부분을 이야기
했나 본데 얼마 안 지나서 암으로 사망했습니다.
보통 암이면 2년은 고생을 합니다. 그런데 이분들은 바로 모두 사망했습니다.
또한 저에게도 국정원. 청와대 민원 후 계속 암 검사를 좀 받아라 또는 자기가
알고 있는 사람이 스님인데 암에 좋은 특효약이 있다면서 병원 가서 암 검사를
하고 암이면 그 특효약을 먹으면 낳는다고 하더군요
하도 여러 곳에서 이야기를 해서 저는 이상하긴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
데 암 검사를 받은 사람들이 사망했습니다.
저는 그 민원 후 정신감정도 받았는데 50문제.50문제.50문제 이렇게 150문제의
정신감정도 정신과에 가서 받았습니다.
146문제 맞췄습니다. 점수로는 96점에 해당하더군요.
즉, 국정원 민원 전에도 산불을 질러 뒤집어 씌우려 했고 국정원.청와대.대검민
원 후 살인사건을 뒤집어 씌우려 했고 또 간첩을 뒤집어 씌우려 했고 다시 CIA
잡는다고 난리 치는 사이 제가 아는 사람들 중 김대중의 과거를 아는 사람들이
제거된 듯 합니다. 이 사건 제조사 할 수 있을 까요.
국정원 직원 4명의 시국 선언문을 보면서 너무도 공감하여 정권 바뀌면 김대중
의 살인 행위들을 조사할 수 있을까 하는 간절한 마음이었습니다.
김대중은 6.25가 터지고 맥아더의 인천 상륙작전 후 단양에 투입되어 조선공산
당 중앙위원을 지냈습니다.
그 이전에는 괴산에서 인민군 위원장들 사상교육을 가끔씩 했습니다.
KCIA 자료 중 1987년 김대중 관찰기록 여기에는 “괴산지역 만행이 보고된 봐
있다”는 바로 그 부분이 제가 설명하는 지역입니다.
모두 역사적 진실임을 밝힙니다.
지금도 교육받은 사람들이 생존해 있습니다.
또 하나 얼마나 잔인했는지 6.25때 김대중은 초가집에 불을 질렀습니다.
시체를 끌고 다니면서 농민을 잡아서 치악산으로 보냈으며 치악산으로 간 농민
들은 총알받이로 인민군이 되어 마지막까지 싸우다 월북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모두 역사적 진실임을 알려드립니다.
필요하면 조선공산당 인민군위원장 부인과 인민군 그리고 김대중이에게 가족을
잃은 사람들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제 민원 후 미 하원에서도 메일이 왔으나 못 갔습니다.
국회 증언도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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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찾아가는 방법과 위치
김대중의 월악산 만행에 대해서 이것은 역사적 진실이다.
우리 가족이 증명합니다.
1951년, 1952년 김대중은 단양에서 김일성의 비밀 명령을 수행하고 있었다.
월악산 국립공원을 찾자. 충청북도 제천군 덕산면 월악리는 김대중이 사람을
잡아 가던 장소이다. 월악리 좌측 산에 6번이나 불을 질렀다.
덕산면 삼거리에서는 인민군과 행진을 했다.
그리고 김대중이 잡아간 농민은 약 1500여명에 이른다.
충북 충주에서 문경 수안보 쪽으로 가다가 살미면에서 좌측으로 단양이라는
팻말이 보인다.
여기서 충주호로 이어지는 강변을 따라가면 월악산 영봉이 나온다.
바로 영봉 입구가 김대중 만행이 자행된 장소다.
이곳에 김대중이 직접 부녀자를 끌어내고 초가집에 불을 질러 농민을 잡아갔다.
좀더 간략히 정리 대한민국->충정북도 충주->수안보 방면에서 단양으로 ->
월악산 송계계곡 입구에서 직진-> 한수면 영봉-> 영봉
아래가 김대중 만행지역이다.
살인마 김대중은 역사와 민족 앞에 진실을 밝히고 이젠 용서를 빌어야 한다.
모두 가보시기 바랍니다.
김대중은 이 주변에서 1년 6개월 동안 머물렀다.
조선인민군 7사단 잔류 게릴라와 같이 지구대에 남아있었다.
조선공산당 남조선로동당 중앙위원의 직책을 수행했다.
사회교육 방송에서도 김대중이 농민을 잡으러 다녔다는 내용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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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아주 구체적인 자료를 가지고 검증해보자.
김대중은 1951~1953년 한국전쟁 때 충청북도 제천군 수산면 고평리 에서
인근에서 마을 사람 36명을 잡아갔다.
사람을 끌고 갔다. 그러나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유는 잡아놓은 농민을
장회리 에서 강을 건너 제천의 금수산 거처 치악산에 공급했다.
치악산은 북한군의 전투지역이다. 거리는 40km 정도 된다.
김대중은 농민을 잡아 인민군을 만드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김대중은 장회리 전투 후 다시는 단양에 모습을 들어내지 않았다.
장회리 전투는 한국전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전투였다 그래서 지금도 그 기록이
모두존재하며 김대중 정부시절 미군에 의한 오폭으로 몰고 가려다 미국이 반기
를 들었다. 또한 도기리 에서 초가집에 불을 질렀으며 덕산면 삼거리에서 인
민군과 행진을 했는데 아직도 지역 주민들은 모두 기억한다.
또한 단양에서 퇴각하던 인민군들이 저지른 만행은 이루 해아릴 수 없다.
이때 김대중의 정식 직책은 조선공산당 남조선 로동당 중앙위원이었다.
또한 농민을 잡으러 다니기 이전에는 괴산지역에서 인민군 위원회위원장과
조선공산당 청년대 사상교육을 시켰다.
또한 김대중 정권은 2001년 인천지역에서 cia를 잡는다고 지z랄 하다 가 결국 대
한민국이 미치는 우를 범했다.
김대중 만행 지역인 충북 단양으로 가자
충북 단양군 가곡면 위원장. 어상천면 위원장. 영춘면 위원장. 별방면 위원장
대강면 위원장 등을 괴산까지 불러 빨갱이 사상교육을 시켰다.
그러나 그들은 한국전쟁 끝나고 대부분 맞아 죽었다.
그리고 일부는 아직 생존해 계신다.
여기서 잠깐 조갑제님 이나 손충무님 등은 안기부 1987년판에 과거 김대중이 괴
산지역에서 만행을 저지른 보고가 올라 온 적 있다 라는 부분을 모르고 있는듯하다.
안기부 자료에는 서울에서 잡혀서 끌려서 목포까지 가서...,
그러나 미국의 자료나 안기부 자료나 모두
김대중의 친구인 김진하에 의해 조작되어 되었다 고 한다
특히 김진하씨가 1995년8월24일자 와싱턴 투데이 주간지 톱으로 김대중의 해상보
안대 경력은 자기 김진하에 의해 조작되었다고 육성 녹음을 남기고 얼마 후 돌아
가셨다고 한다.
즉 김대중의 모든 목포 해상방위대 경력은 가짜라는 것을 죽기 전 증명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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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최근 김대중 만행 지역을 찾은 감회.
최근에 다시 김대중의 만행이 서린 곳을 찾았다.
모처럼 단양강변을 따라 장회리 고평리 수산 1.2리 수산면. 덕산면. 한수면 그
리고 도기리 월악리 문경 세제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한 바퀴 돌며 역사적
아이러니에 젖는다.
김대중은 여기서 1년 반이라는 세월을 지냈다.
그리고 김대중은 이미 20대 후반의 빨갱이였다.
그리고 김대중은 조선공산당 남조선 노동당 중앙위원이었다.
초가집에 불을 지르던 월악리도 또 산과 들에 불을 지르던 도기리도 세월을 잊
은 듯 한겨울로 접어들며 을씨년스럽다.
이제라도 김대중이의 만행을 역사 앞에 밝혀라 이미 김대중은 6.25때부터
살인마다. 우리가 증명한다.
그리고 조사하자. 인민군과 김대중은 월악산 밑 월악리.
도기리. 한수면에 1년 반을 머물렀다.
노벨상보다 역사의 진실이 우선이고 노벨상보다 정의가 우선이다.
지금까지 그랬다면 단 하루 만이라도 제대로 조사를 하자
그래서 김대중의 만행을 역사와 국민 앞에 알려라!
살인마 김대중을 고발하지 못한 이유? 신 군부도 모른 이유는 무었일까.
그러면 의문? 바로 왜 신군 부도 몰랐을까? 여기에 사는 사람들은
세가지 문제가 있었다.
1. 김대중이와 같이 지낸 것, 즉 1년 반이나 김대중이와
같이 지낸 것이 혹시 자기들한테 부담이 될 까봐 쉬쉬한다.
2. 가려? 누구든 한 두 명은 김대중 패거리와 어울렸고 같이 농민을 잡으러 다
닌 사람이 가족이나 친척 중에 있다는 것.
3. 마지막에 김대중이 이끌고 치악산으로 끌려갔다는 것이죠
그리고 치악산전투에서 살아남거나 남아있던 사람들은 북한으로
끌려갔다는사실입니다.
즉, 혹시라도 치악산 전투에서 살아남아 북한에 살고 있다면 그 가족으로써 김
대중을 대놓고 고발 할 수는 없다는 것 입니다.
이것이 김대중을 베일에 가린 이유입니다. 위의 이유와 세월이지나 과거 정권이
김대중씨에게 많은 제제를 가해서 잊고 살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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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첨 최근에 발생한 김대중 만행-노벨상에미처 여러사람 제거한 듯
(인터넷 등 참고)
현대건설 회장 : 정몽헌-북한에 천문학적인 돈 제공. 높은 건물 추락시 공기
저항으로 대부분 벽 가까이 떨어짐 그러나 정몽헌은 화단까지
날아가 떨어 젓다.
그렇게 높은 건물에서 추락해서 피한방울 안 흘림 정몽헌 친구가
여러장의 유서 중 1장 분실했다고 증명.
전라북도 도지사:박태영-돈 모금책 국정원직원4명 시국선언문 참고
김정일 한민전 공개 내용참고
국정원 5차장 : 이수일-방콕아세아델타은행 김정일 계좌송금 국정감사
자료참고
금융감독원 차장 : 정래찬-금융감독원에서 공적 자금 내역 조사.내사 담당.
사실 최근까지도 의심 왜 굳이 금감원?
최근에야 의문 풀림. 주성영의원 이희호 해외 비자금 6조.
국정원 2차장 : 김은성 딸-국정원 차장으로 공인으로는 처음 김대중의 사생아
문제를 제기했다가 딸을 잃어버림. 국감자료 참고
부산시장 : 안상영-노무현의 불알 친구 김대중의 대북송금 특검은
노무현이 들어서자 마자 김대중의치부를 건들인 유일한 사건임.
이 문제로 노무현은 미국에 있는 민미영의 딸을 국정원까지
동원해서 귀국시킴.(제거 될 까봐)
이건희 딸 : 이xx- 대북 송금시 북한이 약속한 돈이 안 들어 온다고
(이건은 심증만) 하루 동안 남북 정상회담 지연시킴
정상회담 잡아놓고 지연시킨 예가 없음. 즉, 이때 삼성에서 모
자라는 돈을 가지고 가지 않았겠나 하는 내용.
노무현 선거 기간 중 삼성이 이회창 쪽으로 기울자 제거했을
수도 있다는 예기도?
차용애(김대중 본부인 :하숙집 주인딸):목을 매 자살(김정일).음독
(한국정보기관)
그러나 차용애 집안은 김대중을 의심함.
또 다른 첩:노벨상을 타기 전 2000년 6월에 병원에서 뛰어내려 자살
(아무도 본 사람 없음. 상부지시라고 주변 입막음)
딸이 있던 것이 sbs에 보도됨. 김은성이 공식적으로 불음
그러나 60넘은 할머니가 병원 창문 넘기는 쉽지 않음.
또 다른 첩:2006년 집에서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니 화장실에서 죽음.
딸이 발견해서 신고함.
김대중은 위에서처럼 첩의 딸이 2명이 더 있고
또 다른 첩에서 딸이 한 명 더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신정아.변양균 사건 때 신정아가 아니냐는
소문이 무성 했슴.또한 땅굴을 조사하던 김병오 대령(51사단)제거.
또한 땅굴을 조사하던 정지용 씨(전 안기부직원) 제거
또한 땅굴을 해외에 알리던 자이 박사(미국인) 제거
또한 땅굴을 조사 하던 윤모 하사 제거
모두 자살이라고 하는데 이분들의 지위와 능력과 사회 활동 등을 미루어
또한 죽은 분들의 부인들과 가족들의 설명으로는 자살할 이유 없다고...
모두 김대중 패거리(살인마부대-국정원 직원4명의 시국선언문 참고)에
의해 제거된듯합니다.
제발 전세계가 나서서 역사적 만행을 증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지금도 이어지는 위치추적과 자금원 차단의 교묘함 정말 힙듭니다.
그러나 제발 역사의 진실만은 밝혀야 하겠습니다.
만약 조사가 필요하면 충청북도 제천군 수산면.덕산면.한수면.괴산면을 찾으세요.
김대중이 살인마임을 증명해 줄 것입니다.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한 한달이나 최소 일주일 이상으로 시간을 잡고 잡입해
서 차근 차근 알아보세요. 농민 1500여명을 잡아간 만행을 알 수 있습니다.
김대중의 부녀자 강간. 인민군과 행진. 초가집에 불지른 지역. 시체를 끌고 다닌
지역을 주민들이 증명할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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